전북 완주 화암사-운주 안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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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곱게 늙고 싶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진다

이준엽의 사찰문화기행 / 전북 완주 화암사운주 안심사

2015.03.03.

안심사 – 안심사 건너편 산 능선이 부처님이 누워계시는듯 하다.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인연 있는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 또한 이슬방울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 응당 이와 같이 무상함을 알고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3·1절로 시작되는 3월은 항일(抗日)의 달이다. 독립은 했지만 일본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제 총이 문화로 바뀌었을 뿐이다. 문화를 내세운 싸움은 사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달에는 그 현장을 찾아본다.

전북 완주 불명산(佛明山)에 자리한 화암사(花巖寺). 절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부처님 가르침을 밝히는 산자락 바위 위에 핀 꽃’이라 하겠다.

화암사-지도법사 보선스님이 극락전 닫집을 설명하고 있다.

절 이름만으로도 뭔가 느낌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꽃이라고 해서 꼭 화려한 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은근하면서도 고즈넉한 꽃, 굳이 딱 집어 말하자며 복수초라 하겠다.

봄 앞자락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노란 복수초. 쉽게 눈길이 가지 않지만 하얀 눈 속에 피는 복수초는 화암사 창건설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옛날 임금님의 딸 연화공주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세상 좋다는 약을 다 써도 허사였다. 어느 날 불심 깊은 임금님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너의 갸륵한 불심에 감동했노라”며 작은 꽃잎 하나 던져 주고 사라졌다.

잠에서 깬 임금님은 부처님이 일러준 꽃을 찾아 수소문했고 마침내 찾고 보니 불명산 깊은 산봉우리 바위에 핀 복수초였다.

연화공주는 연못이 아닌 바위에 핀 연꽃으로 약을 다려 마시고 병이 나았다. 임금님은 부처님 은덕이라 생각하고 그곳에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게 했으니 화암사이다.

몇 해 전만 해도 화암사는 찾는 이가 드물었다. 겨울이면 나무하러 산에 오르는 나무꾼이 쉬어가고, 초파일에 아랫마을 사람들이 등 켜러 올라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절은 항상 고즈넉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화암사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화암사 법당인 극락전이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양식의 건물로 알려졌다. 이른바 하앙 구조식 공포가 학계에 보고된 것이다.

‘하앙’이란 기둥 위에 중첩된 공포와 서까래 사이에 끼워진 긴 막대기 모양의 부재를 가리킨다. 이는 백제계 양식으로, 돌출한 하앙만큼 처마를 길게 뺄 수 있어 비가 많이 내리고 평야지인 백제지역에 맞는 건축법이다.

하앙 구조는 중국에서 시작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방식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반도에서는 하앙 구조의 건축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대륙의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역사를 부정하고 싶어 하던 일본인들에게 호재였다. 하항구조가 한반도에 없다는 것을 근거로 대륙의 문화를 중국에서 직접 받아들였다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1976년, 화암사 극락전 하앙 구조가 학계에 보고됐다. 그토록 콧대를 높이 세우던 일본인들 앞에 하앙을 가진 건물의 자태가 드러난 것이다.

코너에 몰렸다가 한 방 시원하게 날린 역전 드라마처럼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현실에서 연출된 것이다. 아직 한반도에는 화암사 극락전 이외에 하앙 구조의 건축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화암사 극락전.

그러나 극락전을 제대로 느끼려면 법당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미타삼존불과 후불탱화, 닫집의 화려함에 절로 감탄사가 우러나온다.

극락전 맞은편에 자리한 누각인 우화루 또한 어디에서 보더라도 부족함 없이 빼어난 우리 건축물이다.

화암사 우화루에 걸린 목탁과 목어.

근래 들어 화암사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곱게 늙은 절, 욕심 없이 소박한 절…. 산문을 나서며 욕심을 내어본다.

“이렇게 늙고 싶다.”

완주 화암사에서 북으로 20여분 달리면 대둔산에 이른다. 안심사(安心寺)는 대둔산 남쪽 기슭 운주고을에 자리해 있다.

절 초입에 자리한 마을도 안심마을이다. 여기저기 ‘안심’ ‘안심’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안심사 -진신사리보탑

안심사는 불교의 안심입명(安心立命)에서 유래됐다. 이는 ‘안온하고 편안한 경지에 도달해 다른 이에게도 바른 법을 전할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안심은 불교에서 긍극적으로 추구하는 깨침의 경지이다.

안심사를 창건한 신라 자장율사가 삼칠일 기도를 하던 중에 부처님이 열반성지 안심입명처로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스님은 대둔산에 이르러 앞산을 보니 실제로 산의 모양이 부처님 열반상과 같았다. 그 후 열심히 기도를 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절 이름을 안심사라 했다고 한다.

안심사가 자리한 대둔산은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충남 논산군·금산군과 전북 완주군 사이에 있는 대둔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산세가 다르다. 충청도 쪽에서 보면 완만한 산등성이와 깊은 수림이고, 전북 쪽에서 보면 기암괴석을 이루며 솟아있다.

여기에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지리산 산신과 계룡산 산신이 내기를 했다. 두 산신이 셋을 셀 때 입 바람을 불어 돌들을 날린 후, 상대 쪽으로 많이 보내면 이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계룡산 산신이 반칙을 했다. 셋을 세기 전에 미리 바람을 불어 돌을 전라도 쪽으로 몰아 놓은것이다. 그래서 대둔산은 전북 완주 쪽에 바위가 많고, 충남 논산 쪽 숲이 깊다.

안심사는 바위산 아래에 자리해 있다. 수행처에서 바위는 상품으로 친다. 바위의 철분에서 에너지가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처나 기도처는 대부분 바위와 인연이 깊다.

대둔산 기암절벽 아래 자리한 안심사는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사찰이었다. 전각이 30여 채에 산내 암자만 13개를 거느린 대찰이었다.

그러나 6·25전쟁 막바지에 모두 불타고 말았다. 전각이 소실된 것도 안타깝지만 당시 안심사에 소장된 한글경판 658판이 모두 불타고 말았다. 이 경판은 만해 한용운스님이 직접 조사하고 일생에 가장 큰 감명을 느꼈다는 성보문화재였다.

남은 것은 석조유물뿐이다. 그중에 진신사리보탑은 부처님 사리 11과를 봉안한 탑이다. 무인들이 옹호하는 사리탑은 계단이 설해지던 곳이다. 계단이란 출가자들이 계를 받는 곳으로 부처님 사리탑 앞에서 맺는 언약이다. 근래 들어 안심사에 새로운 기운이 돌고 있다. 옛 법당 터에 2층 전각을 복원했다. 불교교양대학을 운영하고 사리탑 기도가 계속되면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심사 주지 일연스님의 법문을 듣고 법당을 나서니 앞산에 편안하게 누워계신 부처님이 한 말씀 들려주신다.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한 화암사 ‘하앙식 구조’

문화는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다.

역사가들은 중국에서 꽃피운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갔다고 평한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대륙의 문화를 직접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건축을 예로 들곤 했다. ‘하앙(下昻)식 구조’이다.

목조건물을 지을 때 대목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지붕과 기둥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다. 기와와 흙으로 덮인 무거운 지붕의 하중을 어떻게 분산시켜 기둥이 지탱하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기둥 위에 길이 방향으로 도리를 얹고 그 위로 지붕에서 내려오는 서까래를 받친다. 그렇게 하다보면 지붕이 낮아져 전반적으로 건물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평야지나 비가 많은 곳에서는 처마를 건물 밖으로 길게 빼야한다. 그래서 규모가 있는 목조 건물은 기둥 위에 또 하나의 구조물을 넣어 서까래를 높이 쳐들고 길게 빼낸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지붕과 같이 경사지게 또 하나의 기둥을 넣었는데 이것이 하앙식 구조이다.

하앙식 구조는 중국 요(遼),금(金) 시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일본 나라(奈良) 시대부터 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물론 한반도에도 고대에는 하앙식 구조가 있었지만 남아있는 건물이 없었다. 이것은 일본인들을 흥분시키게 했다. 세계를 향해 일본문화가 중국에서 직수입했다는 근거로 활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1976년, 한반도 산골 오지의 작은 사찰에서 하앙식 건물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역민 이외에는 누구도 찾지 않던 완주 화엄사 극락전 법당이 주인공이다. 역사는 물론 문화까지 왜곡하던 일본에 시원하게 한 방 날린 것이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하앙식 구조인 화암사 극락전은 2011년 11월 국보 제316호로 지정됐다.

화암사 하앙의 끝은 용머리이고 그 아래는 구름 문양을 조각했다. 그리고 하앙과 하앙 사이는 널판지로 막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건물 뒤편 하앙 끝은 조각이 간결하여 용의 꼬리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