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황금불상 도시…2천500년 전 탁발행렬 그대로
[사찰문화기행] 아쇼카순례단–라오스 불교문화탐방
<상>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
2017.01.19.
아쇼카 순례단이 첫 해외불교문화 탐방으로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 라오스를 찾았다. 한반도의 매서운 한파를 뒤로하고 도착한 라오스는 후덥지근한 여름날씨였다. 복장을 가볍게 하고 보니 외국에 온 것을 실감한다.
첫 번째로 찾은 불교문화 탐방지는 라오스 북쪽 루앙프라방이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426㎞ 떨어진 루앙프라방은 1995년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곳에서는 새로 건물을 지을 수 없고, 건물수리도 허가를 받아야하기에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루앙프라방은 1975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라오스 국왕이 머물렀던 고대도시로, 지명 자체가 불교를 상징한다. 루앙은 ‘위대한’을 뜻하고, 프라방은 ‘황금불상’을 말한다. 위대한 황금불상 도시이다.
현지어로 파방으로 불리는 황금불상은 왕궁박물관에 모셔있다. 호캄(Ho Kham)으로 부르는 왕궁박물관은 1909년에 건립해 라오스 마지막 왕이 머물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됐다. 황금불상은 왕궁 박물관 입구 오른편 황금사원에 모셔져있다.
순금으로 만든 황금불상은 크기 80㎝ 무게 53㎏의 작은 불상이지만, 신비한 힘을 지녔다고 해 국가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불상은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도력 높은 스님이 신통력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이후 황금불상은 크메르 제국을 거쳐 라오스 란쌍 왕국으로 왔다. 당시 라오스는 여러 부족이 치열하게 다투던 때였다. 파응움 왕이 1353년 라오스를 통일하고 란쌍 왕국을 세우자 장인인 크메르 왕이 불상을 보냈다. 황금불상이 라오스로 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황금불상은 크메르 공주이자 파응움 왕의 부인인 왕비의 뜻이 더 강했다. 왕비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이로써 황금불상과 함께 라오스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이다.
이후 라오스에서는 황금불상을 소유하는 왕조가 국왕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됐다. 옛날 중국과 한반도의 여러 왕조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옥새라 하겠다. 그러다보니 수난도 많았다. 가까이는 19세기 태국의 침략으로 황금불상을 뺏겼으나 1867년 되찾아 현재의 자리에 모셨다.
황금불상이 있는 법당 건너편에 라오스 마지막왕인 씨싸왕웡 왕의 동상이 황금불상을 바라보고 서 있다. 부릅뜬 눈에는 사후에도 황금불상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루앙프라방에는 150여개의 사원이 자리해 있다. 사원이 군락을 이룬 곳은 메콩강을 따라 왕궁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사원들이 줄지어 있다. 왕궁박물관 앞 도로는 세계에서 찾은 여행객들로 항상 분주하다. 또한 이 거리는 오후 5시부터 차량통행을 막고 야시장이 돼 여행객에게 또다른 추억을 준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큰 사원은 메콩 강과 칸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왓 씨앙통이다. 씨앙(도시) 통(황금), 즉 황금도시의 사원인 씨앙통은 역사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으뜸이다.
예전에 씨앙통 사원 앞 메콩 강변은 루앙프라방의 관문이었다. 메콩 강은 예나 지금이나 내륙국가인 라오스에서 고속도로와 같다. 국왕과 외국 사신은 이곳 강변에 내려 곧바로 씨앙통 사원을 참배하고 왕궁으로 갔던 것이다.
대법당을 비롯해 전각마다 벽면에는 색유리 모자이크로 불화를 조성했다.
붓다의 생애를 비롯해 라오스 전설, 왕의 업적이 유리로 모자이크한 벽화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해 신비함까지 더한다. 특히 대법당 뒷면에 있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의 축으로 여러 생명들을 묘사해 눈길을 끈다.
라오스의 사원은 큰 법당과 함께 작은 법당이 서너 개 있어 개인별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씨앙통 사원의 대법당 옆에 있는 소법당(기도실)은 특별함이 있다. 이곳에서는 기도가 제대로 됐는지 시험해 볼 수 있다. 기도실 중앙에는 30㎝ 크기의 작은 돌 불상이 하나 있다. 기도를 마치고 이 돌 불상을 들었을 때 쉽게 들리면 기도가 잘 된 것이다. 그런데 불상이 쉽게 들리지 않으면 기도가 부족하다고 한다.
법당에 들어가자마자 삼배를 하고 돌 불상을 드는데 생각보다 무겁다. ‘어, 이게 아닌데…’ 왠지 불상을 들어야 소원이 이뤄질 것 같았다.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억지로 불상을 들었다. ‘안되면 되게 하는 것이지 뭐…’
루앙프라방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왕궁박물관과 씨앙통 사원 옆에 있는 푸쉬(Phusi) 산에 오르면 된다. 산 정상에는 1804년에 건립된 타트 촘 푸쉬(That Chom Phusi) 사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도시 전체를 전망할 수 있다. 루앙프라방은 전설속의 나라에 온 듯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동심으로 돌아가 도도하게 흐르는 라오스의 젖줄 메콩 강을 바라보니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루앙프라방은 이름 그대로 불교도시이다. 건축물뿐 아니라 생활도 그러하다.
이 가운데 외지인이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스님들의 탁발이다.
탁발은 사원의 스님들이 걸식하는 것이다. 출가수행자인 스님들은 다른 말로 걸사(乞士)이다. 출가를 한다는 것은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걸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2천500년 전, 부처님도 직접 탁발을 했다. 오전에 탁발에 나섰고, 오후에는 음식물을 먹지 않았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도 때로는 탁발을 하지 못해 굶기도 한다.
라오스에서는 부처님의 탁발 의식이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루앙프라방에는 사원과 스님들이 많아 쉽게 탁발행렬을 만날 수 있다.
스님들의 탁발은 아침 6시경에 시작됐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멀리서 황색가사를 입은 스님들의 행렬이 다가왔다. 탁발을 하는 스님과 음식물을 공양하는 재가자 모두가 맨발이다. 음식을 받는 그릇인 발우는 하나이다. 재가자들은 음식물을 조금씩 여러 스님에게 나눠 공양한다.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은 음식물뿐 아니라 간식, 승복 등 다양하다.
루앙프라방에서는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리는 외국인들도 많다.
한 무리의 탁발하는 스님들이 지나가고 다른 스님들이 줄을 잇는다. 사원별로 스님들이 거리를 돌며 탁발을 한다.
탁발을 마치고 사원에 돌아온 스님들은 사원 주변을 청소하고 아침 공양을 한다.
출가자나 재가자나, 어디에 있든지 먹는 것이 중요하다. 탁발 체험을 하고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러 발길을 돌렸다.
라오스(Laos), 오랜 외침에도 순수한 영혼 간직
인도차이나 반도 중부에 있는 나라로 공식명칭은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수도는 비엔티안.
바다가 없는 내륙국으로 면적은 한반도보다 약간 크지만 인구는 약 700만 명이다.
종교는 국민의 95%가 불교를 신앙하는 불교국가이다.
8세기 이후 중국 남부에서 라오족이 이주했으며, 1353년 파응움 왕이 루앙프라방을 중심으로 란쌍(Lan Xang) 왕국을 세우면서 최초의 통일왕국이 됐다. 그 뒤 란쌍은 3개 왕국(비엔티안·참파사크·루앙프라방)으로 나눠졌다가 189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됐다.
1949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나 베트남 전쟁과 내전에 휩싸였다. 1975년 600년간의 왕정에 종지부를 찍고 라오스 인민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