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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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보물을 품고, 천 근심이 소멸되고, 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의 고향

[이준엽의 사찰문화기행] 구례 천은사

2016.02.25.

천은사 극락보전 전경. 작은 사진은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극락보전 중단에 자리한 삼장탱.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날씨가 며칠 포근하더니 바람이 매섭다. 입춘도 지나고 꽃샘 추위가 오나 보다. 행여나 봄 꽃을 만날 수 있을까 해 길을 나섰다.

봄 꽃의 으뜸은 매화이고, 매향의 길목은 단연코 섬진강이다. 지리산을 휘감고 돌아 구례와 하동, 광양을 거쳐 남해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봄맞이 나들이로 제격이다.

강을 따라 굽이굽이 혈 자리에 천은사-화엄사-연곡사-쌍계사에 이르기까지 천년 고찰이 자리해 있다. 봄 꽃과 함께 사찰을 참배하기에 이만한 곳이 어디 있으랴. 특별히 구례 천은사를 찾은 것은 봄의 전령을 마중하기 위함이다.

근래들어 광주에서 지리산 찾기가 수월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88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이름도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바뀌었다.

지리산에 들어서니 꽃은커녕 산바람이 칼날같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계절상 봄은 오고 있건만 지리산은 봄 같지 않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인도의 덕운(德雲)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스님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중 지리산 남녘 편안한곳에 수행터를 잡았다. 창건 당시 이곳에 ‘이슬처럼 맑은 샘’이 있어 감로사(甘露寺)로 불렸다.

물이 좋은 사찰이어서인지 도량아래에 큼직한 저수지가 맞닿아있다. 산과 저수지 경계에 무지개 돌다리(피안교)가 있고 다리 위에 2층누각 수홍루(垂虹樓)가 자리해있다. 수홍루는 ‘무지개가 드리운다(垂虹)’는 이름 그대로 연못 끝에 걸린 무지개를 연상케한다.

다리를 건너 ‘감로천’이라 새겨진 커다란 돌 수각의 맑은 물로 몸을 적셔본다.

감로사 수각.

천은사 감로수에는 옛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세월이 흘러 감로사 맑은 샘에 구렁이가 나타났다. 감로수의 수호신인지 삿된 요물인지 알수 없었다. 물을 마실때마다 조심하던 대중 가운데 어느 힘있는 자가 구렁이를 죽이고 말았다. 그러자 감로천이 말라 버렸다. 그후 ‘샘이 숨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천은사(泉隱寺)로 바꿨다고 한다.

불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샘을 지키던 구렁이가 죽자 도량에 화재가 잦았다. 화재로 소실된 천은사를 조선 영조 50년(1774) 혜암 선사가 다시 중창했다. 불사를 마치고 사중의 스님들이 현판 글씨를 얻기 위해 남쪽 바다 끝 신지도를 찾았다. 그곳에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당대 최고의 명필 원교 이광사(李匡師·1705 -1777)가 유배 중이었다.

물 기운(水氣)이 없어 도량에 화재가 잦으니 글씨에 물을 담뿍 담아 달라고 청했다.

일주문 현판 – 이광사가 쓴 수체(水體)로 물흐르듯 하다.

원교는 물이 흐르듯 두 줄로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라는 글씨를 써줬다. 일주문 현판에 새겨진 산(山)과 사(寺)가 살짝 휘어져 있어 정말 물이 흐르는 듯 하다. 신비하게도 집중해서 현판을 바라보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 글씨가 바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체(水體)이다.

이제 천은사는 천 보물을 품고있는 사찰, 천 근심이 소멸되는 사찰, 천 은혜에 감사하는 사찰이란 기치아래 중생들을 맞고 있다.

마침 천은사를 찾은 날, 경사가 났다. 문화재청이 2월 22일 천은사 삼장보살도와 관음보살상을 보물로 지정한 것이다.

천은사 삼장보살도(보물 제1888호)는 1776년 극락전 중단에 봉안한 탱화로 화련 등 14명의 화승이 제작한 것이다. 이 탱화는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는 현존하는 삼장보살도 가운데 유일하게 화기 란에 흰색 글씨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낱낱이 기록해 놓은 것으로, 삼장보살의 도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보물 제1889호)은 보살상의 복장에서 1614년 6월에 조성했다는 발원문이 나왔다. 이 2구의 보살상은 중생을 닮은 듯한 실재감 있는 얼굴, 힘 있는 선묘, 늘씬한 비례감의 특징을 갖춘 17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삼장보살도가 소장된 극락보전은 천은사의 본전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법당에 들어서니 천상의 부처님 세상을 그래도 옮겨온 듯 하다. 천정에는 만다라 꽃이 활짝 폈고, 벽면과 기둥에는 불, 보살과 수행하는 나한, 춤추고 노래하는 천신 등 수많은 등장인물이 제각각의 모습을 나투고 있다.

극락전의 주인공은 중생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불이다. 좌우 보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불단 뒤편으로 돌아가면 또 한분의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 후불탱화 뒷면에 그려진 불화이다. 계곡 언덕에 관음보살이 자리해 있고, 선재동자와 파랑새가 등장한다.

수홍문에서 바라본 저수지.

계곡의 물길이 강조된 것은 화재를 막기 위함인 듯 하다. 물 기운으로 화재를 예방하고자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3마리에 이르는 용과 하마, 수달 등 극락보전에는 화재를 막기위한 숨은 코드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불단 좌우 기둥에 새겨진 동물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모양새가 상서로운데 하마와 수달이라고 한다. 극락전 앞 마당이 연못이고 극락전이 연꽃이어서 물과 친근한 동물을 조성해 놓은 듯 하다.

수홍루과 극락보전 기둥에 있는 상서로운 동물상.

극락전 앞에 서서 부처님처럼 앞쪽을 바라보니 정면에 보제루가 고즈넉하게 자리해있다. 좌우로 설선당과 회승당이 에워싸고있어 도량이 전반적으로 포근하다. 설선당은 선승이 거주하고 회승당에는 학승이 주석하는 요사채이다. 보제루는 강당으로 쓰였다.

극락전 뒤편으로도 응진전, 팔상전, 관음전이 나란히 자리해있고, 좌우 옆으로 삼성각과 진영각이 도량을 감싸고 있다.

전각들이 ‘ㅁ’자 형태로 배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후 사찰이 재건되면서 조성된 일반적인 가람형태이다.

여러 전각들 가운데 유독 팔상전에 마음이 쏠린다. 부처님 일대기를 8폭의 그림으로 조성해 모신 팔상전은 그대로가 꽃 집이다. 건물 벽 칸칸마다 국화, 모란, 연꽃은 물론 이름모를 꽃들이 화사하다. 한참 벽화에 나툰 꽃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마음에 꽃 향기가 그득해진다.

봄 꽃 마중 나갔다가 사철내내 지지 않는 천상의 꽃을 마음에 담아왔다.

걸어라 마음아, 천은사 소나무 숲길을…

금강송과 차밭길.

근래들어 지리산 천은사에서 묵어가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화엄사,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수행처로 불리는 천은사 방장선원(方丈禪院)이 일반인에게 개방됐기 때문이다.

출가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선방은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명당이다. 이런 길지에서 먹고, 자고, 쉴 수있다는 것은 살아생전에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복이라 하겠다.

방장선원에서 펼쳐지는 템플스테이 가운데 ‘걸어라 마음아’라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1박2일 체험형으로 마음을 찾기위해 차(茶)와 요가, 호흡명상을 하며 숲길을 걷는다.

숲길은 천은사를 중앙에 두고 빙 둘러있는 포행길을 말한다. 무지개 돌다리 위의 누각 수홍문에서 시작해 발 머리를 천은사 왼쪽길로 향해보자.

부처님이 법문을 마치면 제자들이 오른쪽 어깨쪽에 부처님을 모시듯 경배하며 뒤로 돌아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에서 탑돌이를 할 때 탑을 오른쪽에 두고 돈다. 천은사 포행길도 천은사를 오른편에 두고 돌면 저절로 탑돌이가 된다.

처음 만나는 숲은 풀밭을 연상케 하는 낮게 깔린 야생 차밭이다. 차밭을 지나면 수량 풍부한 계곡을 건너고, 운치좋은 금강송 숲길을 걷게 된다.

솔밭 길은 지난해 떨어진 솔잎이 융단처럼 깔려있어 푹신하다. 이런 길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야 제 맛이다.

천은사 숲길 걷기는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하다. 꼭 템플스테이가 아니어도 천은사에 가면 맨발로 소나무 숲길을 걸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