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신어산 은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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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의 사랑이야기 담긴 한반도 불교 첫 도래지

이준엽의 사찰문화기행 / 김해 신어산 은하사

2015.06.30.

허 황후와 관련된 불교유적을 간직한 은하사.

수로왕<가야> 아유타국 공주<인도>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지난달,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한국과 인도 양국은 인도 아요디아 지역에 있는 ‘허 황후 기념비’ 개선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허 황후(허황옥. 인도 이름 슈리라트나). 그녀는 본래 1900년 전 옛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다. 당시 아유타 왕은 동쪽 끝 나라에 배필이 있다는 꿈을 꾸고 공주를 배에 태워 보냈다. 이때 만난 이가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이다.

허 황후. (왼쪽) 허 황후 오빠이자 한국불교 최초전래자 장유화상.

공주는 수로왕과 결혼해 아들 열명을 낳았다. 왕위를 계승한 아들을 제외하고 일곱명의 아들은 지리산 칠불암으로 출가하여 스님이 됐다. 왕자 일곱이 모두 부처가 됐다고 해서 칠불암이다. 그리고 남은 아들 둘은 어머니 성을 이어 김해 허씨가 됐다.

김해지역에 내려오는 설화이자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역사다. 지금도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같은 집안이기에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허 황후가 가야에 시집온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당시 한반도에 왕성한 해양국가가 존립했고, 인도와 교류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인도의 문화가 한반도에 전래됐으며 대표적인 것이 불교이다.

흔히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북방전래설이 주류이다. 그런데 허 황후가 가야땅을 밟은 때가 서기 48년경이다. 무려 고구려보다 300년 앞서 남방으로 불교가 전래됐다는 것이다.

근대들어 사학가들은 가야 발생지 김해를 한반도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곳으로 인정하는 편이다.

이런 연유로 김해에는 허 황후와 관련된 불교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사찰이 김해 신어산(神魚山) 은하사(銀河寺)이다.

은하사 대웅전 대들보에 그려진 신어. 김수로왕릉 정문에 있는 물고기문양-인도 아유타국 문장과 같다. 은하사 종각 목어에 새겨진 머리 셋 달린 거북이.(위로부터)

예전에 신어산은 은하산(銀河山)이라 불렀다. 산을 이루는 기기묘묘한 바위가 은하수같이 펼쳐져 있다 하여 은하산이라 불렀고, 은하사도 이 산이름에서 유래됐다. 신어산은 ‘신기한 물고기가 노니는 산’이다. 이 물고기는 멀리 인도산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허 황후의 고향 인도 아유타국의 문장이다. 지금도 인도 옛 아유타국의 고장 아요디야 지역에는 물고기 문양이 많이 남아있다.

인도 아유타국 문양 ‘물고기’

신어산에 들어가는 길목은 다소 혼잡하다. 콘크리트로 무장한 도심지가 산 초입까지 점거하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 산속에 들어서자 신어산의 면목을 느끼게 한다. 아름드리 나무가 심산유곡의 배경이 된다.

은하사 입구에 자리한 작은 연못을 바라보니 금새 번잡했던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하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에 새겨진 신비한 물고기가 반긴다. 인도 아유타국의 문양이다.

은하사 연못 다리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

은하사는 구야국(狗耶國) 수로왕(首露王: 재위 42-199) 때 허 황후의 오빠이자 승려인 장유(長遊)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김해 지역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신어산 서쪽에 인도불교가 들어온 것을 기념해 서림사(은하사)를 건립하고, 동쪽에 동림사를 지어 구야국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은하사 대웅전이 서쪽을 향해 자리해있는 것은 허 황후가 서쪽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 후 은하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대에 중창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화운루·설선당·명부전·응진전·요사채, 그리고 객사·산신각·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유형문화재 제238호)에 들어서면 대들보에 허 황후의 고향 인도 아유타국과 인연 있는 신어(神魚)를 만나게 된다. 본래 대웅전 수미단에도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나 도난당했다. 이제 은하사 물고기 문양은 김해를 상징한다. 김해지역 어디를 가나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1989년 신어산에 불이 났다. 다행히 은하사는 화마를 피했다. 사람들은 하늘 물고기가 노닐고 있는 도량이어서 불길도 피해갔다고 여긴다.

은하사 대웅전은 별스러움이 또 있다.

법당에 대웅전이라는 명패의 주인인 석가모니불이 아닌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오랜 세월 화재와 전쟁 등으로 사찰이 흥망을 이어오다 보니 명패와 전각의 주인이 뒤바뀐 듯하다. 정작 석가모니불은 대웅전 뒤편 응진전에서 만난다.

응진전은 부처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은 ‘마땅히 공양받을 만하다(應供)’는 뜻으로 주로 산세가 수려한 곳에 상주한다고 여긴다.

은하사 나한전도 기암으로 둘러싸인 신어산 아래 자리해 있어서인지 나한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달마야 놀자’ 촬영지 유명세

은하사 명부전 꽃살문.

근래 들어 은하사는 영화로 유명세를 탔다. 2001년 개봉한 ‘달마야 놀자’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절에 피신한 조폭들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스님들 간의 대결을 그린 코미디영화이다. 여기에서 밑빠진 항아리에 물붓기 대결이 나온다.

먼저 스님 쪽에서 한 스님이 항아리 안에 들어가 “이 마음이 물이요, 이 몸이 곧 물입니다. 독 안에 제가 들어왔으니 이는 독에 물을 채운 것입니다”라며 합장을 한다. 그러자 조실스님은 “진짜 물을 채우라 했지 그런 짓을 하냐”며 타박한다. 이번에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항아리에 구멍이 있어 물이 채워지지 않자 문득 조폭 하나가 깨진 항아리를 들고 연못에 던진다. 그러자 조실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폭의 승리이다.

번뇌라는 깨진 항아리는 아무리 막아도 막기 어렵다. 번뇌에 풍덩 빠져야 헤어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지금도 은하사 법당 옆 정현당에는 영화를 촬영했던 연못과 깨진 항아리가 있어 찾는 이를 반긴다.

영화 ‘달마야놀자’ 촬영지 연못과 깨진 항아리.

풍요와 다산의 상징 ‘어등산’

발길을 돌려 동으로 향한다.

물고기 문양은 고대 이래 길상으로 여겨졌다. 다산과 풍요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물고기는 끊임없는 정진을 의미한다. 물고기는 눈을 감고 자지 않는다고 한다. 사찰에 걸린 풍경의 물고기나 벽화에 물고기가 자주 등장하는것도 정진을 강조한다.

광주 광산구의 진산인 어등산(魚登山)도 ‘물고기가 하늘로 오른다’는 산이다. 어등산에는 운수사, 보광사, 천운사, 선운사 등 수많은 사찰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광산구가 풍요로운 고을로 주목받고 있다.

파사석탑, 인도에서 가야까지 뱃길 안내

허 황후릉에 있는 파사석탑.

가야의 발상지는 경남 김해 구지봉이다. 1900년 전, 하늘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구지봉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구지가(龜旨歌·삼국유사 가락국기)이다. 이때 알에서 태어난 이가 수로왕이다.

수로왕은 “하늘에서 나왔으니 배필도 하늘에서 내려줄 것이다”며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때 서쪽 끝 인도 아유타국의 왕이 꿈을 꿨다. 꿈에서 귀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배를 타고 동쪽 끝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했다.

왕은 대규모 사신단과 함께 공주를 배에 태워 보냈다. 그런데 배에만 오르면 거센 폭풍우와 파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항해를 하다 수없이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결국 공주의 오빠이자 스님인 장유화상이 동행하게 됐다. 스님은 배 안에 오층석탑을 세우고 기도했다. 그러자 거센 파도가 잦아들었다. 김해 구산동 구지봉 옆 허황후릉에 있는 파사각 석탑이다.

삼국유사에는 ‘호계사(虎溪寺)에 허황후가 가져온 파사석탑이 있는데 붉은색이 나며 이 지방에서 구할 수 없는 돌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파사각 탑은 5층으로 돌에 붉은 빛이 도는 희미한 무늬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신비하게도 닭 벼슬피를 파사석에 바르면 굳지 않는다고 한다.

파사석탑은 파도를 잠재운다고 하여 진풍탑이라고도 하며, 바다로 나가는 이들이 파사석을 떼어가는 바람에 탑에 여기저기 상처가 남았다.